[리뷰]고거 참 재밌는데 눈물이 나네. <달도달도 밝다> 만화 <헤븐>에는 유독 노인에게 약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노인이 뭔가 부탁하면 뭐든 거절을 잘 못하고, 노인과 얘기가 가장 잘 통하는 식이다. 그 주인공 같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가진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과는 또 다른, 왠지 어른이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느낌의 기억들은 노인이 지닌 특유의 천진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다시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노인의 현명함과 아이의 천진난만함은 어딘지 모르게 통하는 데가 있다. 그래서인가, 노인과 아이들의 앙상블이 뛰어난 작품들이 몇몇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 영화 <집으로>가 그랬고, <시네마 천국>등의 작품도 생각이 난다. 연극 쪽에서도 하나 추가할 만한 작품이 생겼다. <달도달도 밝다>가 뒤지지 않는 하나의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 <달도달도 밝다>는 고향이 이북인 할머니와 소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다. 소녀는 스스로 그린 원 밖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멀리 떠나고 싶어 한다. 소녀 앞에 나타난 할머니는 물레를 등에 매고 있다. 마음을 열지 못하는 소녀에게 할머니는 물레로 실을 짜듯 옛이야기를 하나씩 둘씩 풀어놓으며 장산곶 마을을 향한 자신의 추억 여행에 소녀를 끌어들인다. 장산곶 마을의 갑돌이와 꽃분이는 해당화로 사랑을 키워가고, 해송 밑에서 달을 보며 사랑을 약속한 사이. 장산곶매의 도움으로 무사히 결혼에 이르게 된 둘은 혼인 날 거대한 구렁이가 둘 사이를 가로막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슬픈 이별을 하게 된다. 언제나 그리운 고향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꽃분이의 곱던 얼굴에 주름이 늘고 허리가 굽게 된다. 이북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의 얼굴에 꽃분이의 고운 얼굴이 겹쳐지고, 가슴이 아픈 소녀는 언젠가 자신이 떠날 때 타려고 했던 종이배를 할머니에게 건넨다. 할머니는 그 배를 타고 마지막 여행을 떠나고, 할머니를 배웅하는 소녀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소녀는 어느덧 성장을 한 것이다. 이 작품에는 가끔 숨이 차오르는 감동적인 대사와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을 만나게 된다. 질박한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 종이인형과 무대, 우리 가락을 타고 흐른다. 장산곶매 이야기를 아는가? 장산곶매는 1년에 두 번 대륙 사냥을 나가는데 사냥 나갈 때 전날 자기둥지를 부수는 부리질 연습을 한단다. 장산곶(북한 지방)의 설화를 토대로 하고 있는 장산곶매의 이야기는 민중의 용맹함도 상징하지만, 길고 긴 ‘성장’이라는, 세상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울림을 준다. 안정과 나태함을 과감히 뿌리치고 먼 곳으로 떠나는 장산곶매를 통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개짓을 할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구렁이가 갈라놓은 슬픈 연인의 이야기는 문득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를 떠올리게도 한다. 불가항력으로 나뉘어진 민족이지만 언젠가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산가족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많은 사연을 모아서 가장 슬프고 아름답게 빚어놓으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다. 시종일관 우리장단이 울리며 관객들도 함께 참여하는 흥겨운 분위기는, 노인에서 아이들까지 전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을 줄 만하다. 5월 8일까지, 예술극장 나무와 물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
남궁경 기자 (skaiwai@ticketlink.co.kr)
출처: 티켓링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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